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다섯 황제의 해 (문단 편집) === 페르티낙스 시해와 황제 경매 === 서기 193년 3월 28일, 페르티낙스 황제는 몸이 좋지 않아 공식 일정을 취소하고 황궁에서 쉬고 있었다. 이때 300명의 근위대 장병들이 [[팔라티노 황궁]]으로 쳐들어왔다. 이때 보초를 서던 호위병들도 가담했고, 자신들을 모욕한 황제에게 반감을 품고 있었던 황실 직속 해방노예들도 황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며 어서 죽이라고 부추겼다. 주위 사람들은 페르티낙스에게 어서 몸을 피하라고 권유했지만, 페르티낙스는 거부 후 자신에게 불만을 품은 근위대와 대면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나섰다. 역사가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페르티낙스는 방안에 들이닥친 병사들에게 자신이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업적, 그리고 [[프라이토리아니]]가 황제를 시해하려 드는 것의 부당성 등을 설파했다. 그러나 병사 한 명이 >"병사들이 보낸 칼이나 받아라" 라고 소리친 다음 칼로 내리쳤고, 다른 근위병도 가세했다. 결국 그는 여러 병사가 내지른 칼에 찔려 피살당했다. 이는 동시대 역사가로 황궁 서기관 출신 관료 [[헤로디아누스]]의 기록도 비슷한데, 페르티낙스는 본래부터 늘 모든 문제는 직접 본인이 나서야 해결된다고 믿는 신념이 강해 측근, 황궁 관료들이 경내 혹은 황궁 비밀 통로로 일단 피신할 것을 간곡히 청함에도 이렇게 발언하면서 거부했다고 한다. > "품위 없고, 굴욕적이며, 황제에게 어울리지 않고, 이전의 나 자신 삶의 방식과 업적에 걸맞지 않다!" 이 발언 후, 페르티낙스는 본인을 에워싼 병사들에게 용감하고 떳떳하게 나아간 다음, 성난 근위대 병사들에게 자신을 죽여도 두렵지 않다고 발언 후 이성을 되찾고 복귀하면 모두 없던 일로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또 그는 당시 근위대 내에서 돌고 있는 소문인 "콤모두스가 페르티낙스 사주로 시해됐다"는 것이 사실이 아니며, 콤모두스 죽음은 자신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떳떳하게 확인해줬다고 한다. 또 병사들에게 과거 장군으로 존경받았던 때처럼 자신은 부하들인 장병들이 이번 일로 불명예스럽게 반역자로 처벌되는 것을 막고 싶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러자 대부분 병사들은 페르티낙스에게서 무기를 거두고 서서히 물러났는데, 여기에서 일부 병사들이 갑자기 뛰어 들어 페르티낙스를 공격해 죽였다고 한다. 이렇게 되자 대다수 근위대 병사들은 경악했는데, 라이투스와 황제 시해를 벌인 병사들은 이미 벌어진 일이라고 하면서 담담하게 거사가 성공함을 선언했다. 그 후 디오 카시우스와 헤로디아누스의 당대 기록 모두의 것은 똑같다. 근위대는 라이투스와 황제를 시해한 병사 무리 주도 아래에서 페르티낙스의 수급을 장대에 높이 매단 채 진지로 돌아갔다. 이후 근위대 병영 문을 걸어잠근 뒤, 전시 상황처럼 요새 방어하듯이 병영을 지켰다. 며칠 후, 라이투스는 초유의 행위를 저질렀다. 그는 '''새 황제를 뽑기 위한 경매를 공개적으로 벌였다.''' 이 경매에 입찰한 이는 페르티낙스 황제의 장인이었던 티투스 플라비우스 술피키아누스와 페르티낙스 황제의 오랜 선의의 라이벌이었던 저명한 원로원 의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였다. 술피키아누스는 갓 사춘기를 넘긴 어린 딸을 본인의 아버지뻘 나이인 페르티낙스에게 보내 결혼시킨 뒤 더 큰 권력을 얻었던 위인이었다. 그는 외손자를 앞세워 페르티낙스의 즉위 이후 권세를 휘둘렀고, 경매를 통해 제위를 사겠다는 열망이 큰 그리스인 귀족으로 야심가였다. 이탈리아 북부 메디올라눔([[밀라노]]) 출신이었던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와 루키우스 베루스 형제 황제들 아래에서 장군 및 행정가로 엄청난 능력을 선보인 총신이자 충신으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붕어하기 직전 고문단 일원에 지명하고,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총독직을 맡긴 거물이었다. 그는 콤모두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는데, 간신 페렌니스는 율리아누스의 말을 경청하고 존중한 콤모두스를 완전히 장악하고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세 번이나 모함했다. 따라서 그는 게르마니아 인페리오르 총독직에서 해임된 뒤, 여러 번에 걸처 죽을 뻔했다. 그러나 그는 고문으로서 목숨을 걸고 콤모두스에게 직언을 아끼지 않았다. 따라서 당시, 원로원 의원으로 제위 입찰 이전까지는 동료들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었다. 두 경쟁자 중 가장 먼저 입찰하고 이를 주도한 이는 술피키아누스였다. 그는 제위를 놓고 계속 돈을 올려 입찰했다. 그렇지만 라이투스와 근위대는 다른 경쟁자가 입찰할 때까지 이를 받지 않아, 결과가 빨리 나오지 않았다. 이때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는 술피키아누스보다 더 높은 보너스를 약속하면서, 만약 술피키아누스를 뽑는다면 그가 사위였던 페르티낙스에 대한 보복을 단행할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이 황제가 못 된다면 페르티낙스 시해에 대한 복수를 본인 손으로 하겠다고 경고했다. 라이투스와 근위대는 논의 끝에, 자신들에게 보복을 가하지 않을 디디우스 율리아누스를 새 황제로 세우기로 결의했다. 그렇게 황제가 되었지만 앞날이 걱정되었는지, 디오 카시우스에 따르면 디디우스는 첫날 밤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뜬 눈으로 지샜다고 한다. 그리고 그의 걱정은 적중했다. 페르티낙스가 살해되고 디디우스 율리아누스가 프라이토리아니의 경매에 응찰해 황제로 지명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로마 제국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